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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조윤희
ㆍ작성일	2020-04-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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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부활 제3주일 주임신부님 강론
부활 제3주일 가해
루카 24, 13-35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 관한 오늘 복음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제자의 상황과 느낌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느낌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 속에 등장하는 두 제자는 무척이나 실망하여 있을 뿐 아니라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자렛 예수께 모든 희망을 걸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구약에서 오랫동안 예언했던 약속된 메시아 구세주로, 로마 제국의 세력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줄 해방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영광과 안녕과 세력이 시작된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고 자신들의 가정과 직업 그리고 생활방식마저도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예수님은 중죄인으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모든 희망과 기대는 한낮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덤이 비었다고 전하는 여인,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하는 여인의 전갈도 그들의 눈을 뜨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세주께서 일으키실 새로운 나라, 힘의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에 집착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좌절과 허탈 그리고 실망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던 그들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슬픔과 좌절, 고통을 안겨준 장소인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두 제자의 상황이 과연 2천 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고 맙니까?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엠마오로 길을 떠나는 제자들의 사정과 너무나 비슷한 신앙인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이 그 교회의 모습에 좌절하고, 실망한 경우도 참 많습니다. 삶에 지쳐 색다른 위로를 찾아 교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위로는커녕 이해되지 않은 교회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나 인간적인 부조리와 고압적인 자세에 도리어 마음의 상처만 받은 경우도 종종 있어 왔습니다. 교회가 현대 사회에 희망과 매력을 주기보다는 교회도 별 수 없다는 체념과 좌절을 안겨 주기가 십상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의 삶의 운명 또한 그러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착하게 살면 하느님께서 보상하실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기대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교회가 말한 대로, 가르친 대로 올바로 살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지켜 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은 힘들 때 고통 가운데서 “주님, 도와주십시오.”하고 외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도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현재 교회의 모습이 복음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다”하고 말합니다. 몇 년 전 교회의 쇄신을 주장하셨던 어떤 목사님이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셨는데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공감을 주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의 모습에 실망과 좌절하여 교회를 멀리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신앙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하느님을 떠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바로 엠마오로 가는 길을 시작하거나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길을 가는 두 제자와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좌절하고 실망하게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이 일어났어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자들은 건성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과 기대는 전혀 현세적인 데에만 있었기에 죽음을 통하여 생명이 오고,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이 이룩된다는 놀라운 신비는 그들의 이해를 뛰어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앞만 보는 데만 급급한데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마음과 여유가 없습니다.
“십자가 안에 구원이!” 라는 놀라운 진리를 우리 또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인 사고에만 집착하고 눈에 보이는 이익에만 매달리는 우리의 실제 생활이 이 진리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인간적인 욕심의 옷을 벗어버리고 푸른 하늘을 바로 바라볼 수 있기나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불행이나 병고, 사람들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미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마음의 고통, 이 모든 것이 단지 내가 하느님을 믿으니까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 주님의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도 고통의 자리는 있습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하는 고통스러운 물음은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소서.”하는 신뢰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필이면 왜 내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하느님은 나를 버려두시는가?” 하는 물음을 자주 던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길을 두루 그리고 멀리 살피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인생길을 두루 그리고 저 멀리 보십니다. 진실한 신앙인은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깁니다. 이러한 신뢰와 의탁 안에서 주님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십자가의 길을 극복하는 힘을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신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또한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은 우리가 고통을 겪지 않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내팽개치거나 홀로 버려두지는 않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통 중에서도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하고 주님께 간청하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탁에 자리 잡으시고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들에게 떼어주시자 그들은 눈이 열리어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루가 24, 29. 30). 우리는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길에 주님이 함께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언제나 함께 길을 걸어가시는 주님을 향한 우리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합니다. 신자들이 서로서로 기도와 사랑으로 살아가고, 주님의 빵을 나눈다면, 주께서는 확실히 우리 곁에 계신다는 진리를 일깨우고자 합니다. 미사 잔치에서 주님은 열린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숨어계시지만 부활의 기쁜 소식을 믿고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알아보실 수 있게 드러나십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코로나 19로 심신이 무너져가는 이즈음 오늘 복음이 진정 우리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강론이 좀 길지요?

주임신부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