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과 성품성사와 혼인성사
◈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
성품성사와 혼인성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봉사하는 성사이다. 이 두 성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받은 소명에 따라 사랑의 봉사에 일생을 바쳐 헌신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푼다. 그러므로 성품성사를 받은 서품자들과 혼인성사를 받은 부부들은 각각 그 고유한 사명으로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게 된다.
성품성사를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백성의 목자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심 없는 봉사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혼인성사를 통하여 신자 부부는 혼인성사 생활을 통해 가정과 이웃과 교회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봉사에 일생을 헌신하게 된다.
Ⅰ. 성품성사
1. 성품성사의 의미
① 성품성사란?
성품(聖品)성사를 받은 사제는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봉사함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전하고 모든 사람을 성화시키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는다.
세례성사를 받은 모든 신자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신자들은 각자의 소명에 따라 사제이고 예언자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세례로 받은 사제직을 수행하며 이를 보편 사제직이라 한다.
이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 달리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에 봉사하도록 서품된 사람들은 고유한 직무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직무 사제직)한다.
② 직무 사제직
사제들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봉사하는 것이다.
자기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와 자기 양떼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제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베푸시는 특별한 봉사를 밝혀주는 표상들이다.
그러므로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선택되어 세 가지의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 첫째 직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사도들의 직무가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선포하여 사람들을 신앙에로 부르고 회개시켜서 구원으로 이끄는 일임을 분명히 했다.
► 둘째 직무는 하느님 말씀의 선포뿐만 아니라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 백성을 성화(聖化)시키는 일이다. 즉 사제는 세례성사로 사람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이끌어 들이고, 고해성사로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와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시켜주며, 병자성사로 앓는 이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전해 준다. 그리고 특히 미사 때 성체축성을 통해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으로 분배하고 이 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완전히 결합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 셋째 직무는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로 임명된 하느님 백성의 목자이며 지도자로서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 일이다. 당신의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제는 하느님 백성을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기 위해 가르치고, 성사 집행을 통한 봉사는 물론 참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신자들을 조직하고 이끌어야 한다.
2. 성품성사의 세 품계
직무 사제직은 예로부터 주교(主敎)․신부(神父)․부제(副祭)의 세 품계로 수여되었다. 직무의 다양성은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존재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사제직에 참여하는 두 품계(주교직과 신부직)와 봉사의 품계(부제직), 이 세 가지 직분 모두 ‘서품(敍品)’이라고 불리는 성사적 행위인 성품성사를 통해서 주어지며 성직자(聖職者)가 되는 것이다.
◈ 사제 독신제
사제 독신제(獨身制)는 교회의 거룩한 전통(성전,聖傳)이다. 이 토대는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마태 19,12)는 예수님의 말씀과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에 마음을 쓰게 되어 마음이 갈라집니다.”(1코린 7,32-34)는 사도 바오로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러한 권고 말씀에 근거하여 점차 동정성(童貞性)을 높이 평가하면서 독신을 규칙으로 삼는 수도자와 금욕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제직의 본질이 반드시 독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교회가 사제직에는 결혼생활보다 독신생활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교회법으로 정하고 성품성사를 받는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부과한다. 사제의 독신생활은 수도자가 수도 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수도 서원을 하듯이 사제 지망생들이 부제품을 받기 전에 교회의 요구대로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약속하는 것이다. 사제 독신제는 가정의 포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더 잘 따르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자유롭게 목자적(牧者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Ⅱ. 혼인성사
1. 혼인성사의 의미와 효과
① 혼인성사의 의미
세례성사를 받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루는 혼인은 성사(聖事)가 된다. 따라서 이들의 혼인생활은 성사생활이다. 혼인성사는 남자와 여자의 자유로운 동의로 이루어지는 결합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부부와 그 가정에 내려주는 거룩한 표지이다.
모든 성사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통하여 인간을 성화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며, 하느님께 대한 흠숭을 목적으로 한다. 혼인성사도 이처럼 남녀의 결합을 통해 한 몸으로 맺어진 부부를 축성하고 성화하며, 하느님의 선물인 자녀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고, 신앙과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흠숭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② 혼인성사 예식
혼인성사는 한 쌍의 남녀가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자유로이 계약을 맺고 결합하여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갈 것을 약속하고 축복받는 성사이다.
혼인성사의 표지는 성사 예절을 이루는 부부 상호간의 혼인 동의이다. 혼인성사에서는 신랑과 신부에 의해 선언되는 혼인 동의가 가장 중요하기에 부부가 성사 집전자이자 성사 수령자인 것이다. 이때 사제는 교회 공동체의 권위 있는 증인으로 참석하여 새 가정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으로 혼인의 축복을 빌어준다.
혼인성사의 은총은 부부의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그들 간의 일치를 더욱 강화한다. 이 은총으로 그들이 부부생활과 자녀 출산과 그 양육을 통해서 서로 성덕에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혼인성사 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혼인성사를 이루기 전과는 달리 인간적 사랑뿐만 아니라 성사적 은총을 가진 초자연적 사랑을 나눈다. 이는 서로 상대방을 구원할 수 있는 지극히 은혜로운 사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와 달리 부부 스스로 성사를 이루기 때문에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 이미 혼인한 부부가 세례성사를 받으면 그들의 혼인생활도 성사가 된다. 따라서 교회 밖에서 합법적이며 유효한 혼인을 한 비신자 부부가 세례성사를 받으면 그 자체로 성사혼(聖事婚)으로 승격된다.
2. 혼인의 목적과 특성
① 혼인의 목적
하느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혼인의 목적은 부부사랑으로 일치하고 그 사랑의 열매인 자녀출산에 있다. 이 목적은 인간과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서 오신, 그리고 당신교회를 신부(新婦)라고 부르시는(에페 5, 27 : 묵시 22,17참조)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울러 자녀는 결혼의 축복에 따른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부부는 충실한 사랑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신앙교육을 통해 구원사업의 협조자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목적은 부부가 상부 상조하고 모든 것을 나누는 결혼생활을 통해 완성된 인간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있다. 이렇게 혼인성사는 개인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와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므로 봉사의 성사라고 한다.
② 혼인의 특성
혼인의 특성은 단일성(單一性)과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이다. 혼인의 단일성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뜻한다. 부부 사랑은 단순한 육체의 일치를 넘어, 한마음 한 영혼을 이루는 깊은 인격적 일치를 도모하는 것이며 상호 증여의 서약에 대한 신의를 요구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 단순한 순간의 스침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부부 상호간의 신뢰와 사랑이 필수적이다. 이 신의와 사랑은 결혼과 가정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다. 그러므로 혼인의 단일성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이미 정해 주신 일부일처제가 아닌 어떠한 형태의 혼인도 배격한다. 중혼이나 축첩은 혼인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죄악이다.
또한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부부 사이를 깨뜨리는 이혼(離婚)을 용납하지 않는다. 혼인관계는 배우자 쌍방의 자유로운 동의에 의하여 성립되며 그 동의는 ‘상황이 달라질 때까지만’이라는 한정적인 것일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이혼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하느님 앞에서 맺어진 혼인에는 이혼이 용납되지 않는다. 만약 이혼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면 혼인의 신성성(神聖性)과 신비성(神秘性)은 존재하지 않으며, 배우자의 부족함을 서로 채워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더 나은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되는 불행과 수많은 가정 및 사회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갈라질 수 없듯이 혼인의 서약을 한 부부는 죽음이 아니면 갈라질 수 없다. 그러므로 신랑과 신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보여주는 사랑의 신비를 실현하겠다는 지향을 가지고, 결혼생활을 통하여 그 사랑을 부부가 실현하며 자녀를 낳아 기름으로써 혼인의 서약을 완성하여야 한다.
3. 혼인에 관한 교회의 규정들
교회는 혼인의 본질적 요소나 특성을 바탕으로, 혼인 당사자들과 새로 꾸며지는 가정을 보호하고자 혼인법(婚姻法)을 정하여 놓았다. 교회의 혼인법에는 법이 금지하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면 누구나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으며, 가톨릭 신자들의 혼인은 비록 한쪽 배우자만이 가톨릭 신자라도 하느님의 법과 교회법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회법」제1058조, 제1059조 참조)
신자와 신자 사이 또는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혼인이 교회의 혼인 예식을 따르지 않고 사회 예식으로만 혼인하거나, 신자와 비신자 사이 또는 신자와 타종교인 사이의 혼인이 교회의 허락(관면,寬免) 없이 이루어진다면, 교회법상 혼인 장애(조당,阻擋)에 놓이게 된다.
혼인 장애는 교회가 인정하는 예식으로 혼인하지 않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민법상 혼인을 맺을 자격(나이, 혈연관계, 전 혼인의 유대 등)이 없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혼인 장애 상태에 놓인 이들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지만 성사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혼인 장애를 해소해야만 합법적 혼인이 성립되고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다.
비신자와 혼인하려는 신자는 혼인한 다음에도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태어날 자녀에게 가톨릭 신앙을 교육시키겠다는 서약을 하여야 한다. 이런 혼인의 경우, 가톨릭 신앙을 지닌 사람이 열심한 신앙과 성실한 생활로써 배우자는 물론 그 가족과 친척에게도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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