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체 후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가요? 특송?

영성체가 끝나면 이제 미사는 빠르게 마무리 단계에 들어섭니다. 감사 노래, 영성체후 기도, 축복과 파견 등의 마침 예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작 예식에 비하면 아주 단순한 예식입니다. 성체 분배가 끝난 뒤의 순서에 대해 총지침 164항은 “그릇을 씻은 다음 사제는 주례석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얼마동안 거룩한 침묵을 지키다가 시편 또는 다른 찬양 노래나 찬미가를 부를 수 있다” 고 침묵의 기도 시간을 권합니다.

영성체하는 사람이 아주 적었던 옛날에는 미사가 끝난 후에도 개인적으로 감사기도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남아있었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사실 예부터 신자들은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일어서 성당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교회는 미사가 끝나면 얼마동안 제자리에서 조용히 감사기도를 바치라고 권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경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침묵 기도는 새로 도입된 부분입니다. 사실 성체를 받아 모시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이 시간이야말로 개인적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그리고 경배를 드리기에 적합한 최고의 기도 시간입니다. 미사 중 여러 번의 침묵 기도 시간 가운데서 미사경본은 강론 후와 영성체 후의 이 시간을 최적의 침묵 기도 시간으로 여겨 지키기를 권고합니다. 강론 후의 침묵 시간은 선포된 하느님 말씀에 다가가는 묵상의 침묵 시간이며, 영성체 후의 침묵은 성찬의 신비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기도 시간입니다. 이러한 묵상과 감사기도의 시간은 받아 모신 성체 신비의 의미에 잘 어울립니다.

현대인의 특징 중의 하나라면 고요한 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공동체에게 침묵 기도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것은 적극 권장할 일입니다. 사제와 신자들은 이 침묵 기도를 소홀히 하지 말고 오롯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 침묵 시간을 생략하거나 또는 어울리지도 않는 긴 묵상글로 이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근자에 많은 본당에서 영성체 후 침묵 기도 시간에 개신교 교회에서처럼 특송(?)이란 이름의 찬양노래를 부르는 곳이 많습니다. 이는 분명 잘못된 관행입니다. 더욱이 성가대 또는 독창이 끝나면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희한한 일이 자연스레 자행되고 있습니다. 성가대는 연습하느라 고생했으니 박수와 환호로 보상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박수가 없으면 성가대는 섭섭해 합니다. 침묵 기도 시간이 아니라 연주를 감상하는 시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실제로 영성체 후 침묵 시간에 성가를 부르는 것은 교우들이 개별적으로 방금 받아 모신 성체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영성체 묵상곡입니다. 기도의 연장입니다. 노래를 부르더라도 이 시간의 특성에 어울려야 합니다. 가끔은 오르간이 연주되어 침묵 기도 시간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긴 연주나 높은 음의 소리는 미사 전례가 권하는 이 시간의 의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공지사항을 알리는 때는 언제입니까?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나면 사목상의 당부나 공지사항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총지침(166항)은 분명하게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난 다음 필요에 따라 공지 사항을 짤막하게 알린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이 184항에서도 지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 위치가 강론 끝이나 복음 봉독 후(오늘날 일 년에 한 번 주님 공현대축일에 그해의 이동 축일 발표 때) 또는 미사 직전이나 직후, 파견 전에 하기도 했습니다. 미사 전례 개정위원회는 공지 사항을 알리는 때에 대해 미사의 분위기나 신자들의 심리를 고려하여 마침 예식이 알맞다고 여겨 영성체 후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분명 과거의 관습보다는 훨씬 나은 자리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본당에서는 영성체가 끝나고 제대 정리가 끝난 다음 바로 공지사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찬 전례는 영성체 후 기도로써 마칩니다. 공지는 그 성격상 예식의 한 부분이 아니므로 영성체 후 기도 전에 하는 것은 성찬 전례 의미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단순히 또 다시 일어서고 앉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 훈화나 공시사항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분명 공지는 필요한 경우에만 짤막하게 해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미사를 끝내는 자리에서 신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의 말을 길게 늘어놓으면 신심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리적 부담이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장황한 설명은 성찬례의 생생한 느낌을 깨뜨리는 심리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공지 내용이 질책이나 헌금 등에 관한 사항이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게 합니다. 따라서 사제는 공지 사항을 엄선하여 간단명료하게 말하고 나머지는 주보 등을 활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공지를 미사 강론보다 더 길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신자들에게 감사의 말이나 한 주간의 평안과 축원을 비는 작별 인사를 연결시킨다면 이는 사목적으로도 미사를 신자들에게 친근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교우들이 주일날 성당에 와서 사제로부터 “오늘 미사를 여러분과 함께 거행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뿐만 아니라 “한 주간 건강하고 좋은 나날이 되기를 축원하며 다음 주 다시 이곳에서 만납시다!” 라는 따뜻한 작별 인사의 말을 듣는다면 미사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