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석과 입손 영성체
사제석은 어디에 자리해야 하며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과거 트리엔트 전례 미사에서 사제는 입당 후 제대 앞 층계 아래서 층하경과 고백의 기도를 바치고 난 후 제대에 올라 미사가 끝날 때까지 시작 예식과 말씀 전례, 성찬 전례 그리고 마침 예식까지를 한 곳에서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전례헌장이 반포되고 그 후속 작업으로 나온 첫 예식서인 로마 미사 전례 지침서(1970년)는 사제석과 말씀 전례의 중심 식탁인 독서대 그리고 성찬 전례의 중심 식탁인 제대에 대해 명백하게 구분하며 각 부분에 대해 지침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제석에 대해서 가르치는 내용을 보면, “주례 사제의 좌석은 회중을 주도하고 기도를 이끄는 임무를 드러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자리는 성당의 구조와 다른 설비상의 장애가 없는 한 제대의 높은 자리와 신자들과 마주보는 것이 가장 좋다”(미사경본 총지침 310항)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제석에서 주례자는 시작 예식을 시작하고, 만일 주례자가 복음 봉독과 강론을 직접 하지 않을 때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침묵을 지키고 묵상을 하는 시간, 보편 지향 기도 때, 그리고 가능하다면 영성체 후 성찬 전례를 마무리 하고 마침 예식을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미사 전례의 시작 예식을 제대나 독서대에서 거행할 수 없습니다. 시작 예식의 구성은 그 기본 구조에서 제시되어 있습니다. 입당 후 사제는 제대에 다가가 제대에 입 맞추며 경의를 표합니다. 고대 문화권에서 기원한 입맞춤 인사는 예부터 있어 왔으며 로마 전례 안에서도 일반화되었습니다(한국교회에서는 입맞춤을 깊은 절로 대신합니다). 지침서는 “제대에 인사하고 분향한 다음 사제는 주례석으로 간다.”(미사경본 총지침 124항)고 분명하게 지시합니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사제석에서 신앙고백과 보편 지향 기도의 인도와 마무리를 합니다. 성찬 전례 시작인 예물 행렬이 있으면 예물을 받고난 후 사제는 비로소 제대로 나아갑니다. 부제가 있으면 부제가 예물을 받아 제대를 준비한 후에 비로소 사제가 제대로 나옵니다. 성체 분배가 끝나면 부제가 있으면 사제는 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례 용기와 제구들은 부제나 봉사자(복사)들 또는 성체분배 협조자들에 의해 주수상으로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영성체 후의 침묵이나 묵상을 통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 시간을 사제석에서 가집니다. 그 다음에 사제는 주례석이나 신자들을 영성체 후 기도에 초대합니다. 영성체 후 기도를 마친 후에야 사제는 필요에 따라 신자들에게 공지사항을 전합니다(총지침 166항). 많은 경우 영성체 후 기도가 바쳐지기 전에 사목적 권고나 공지사항을 전하거나 심지어 다른 예식(축하식이나 다른 행사 등)을 거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성체 후 기도로써 비로소 성찬 전례가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공지사항 전달이 끝난 후 사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주례석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마침 예절을 거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사 전례의 각 부분들과 그에 해당하는 장소의 뜻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시작과 마침 예식은 주례석, 말씀 전례의 식탁은 독서대, 성찬 전례의 식탁은 제대입니다. 미사 전례 시작에서 마칠 때까지 제대 한 자리에서 거행하는 것은 미사 전례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헌장의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사제가 임의대로 전례를 꾸려가고 변경시키기에 본당신부가 바뀌면 미사 전례 방법이나 순서가 바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허다하게 생겨납니다. 오죽하면 신자들이 “신부님마다 다 다르게 하시니 정신이 없다”고 말할 정도니 전례서가 말하는 전례정신과 지침은 아무 소용이 없는 규정에 불과할 뿐입니다. 범어대성당은 이런 면에서 모범적입니다.
영성체 순서와 입 영성체? 손 영성체?
예로부터 영성체 때 주례 사제가 첫 번째로 성체와 성혈을 영합니다. 그런 다음 신자들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이순서는 지금도 그대로 지켜집니다. 일부 학자들은 사제가 성체를 먼저 영하는 것은 성직자 중심주의의 유물이며 사회의 잔치 예법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신자들에게 먼저 성체를 영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런 주장은 역사적인 전통에 반대되며 특히 신학적 숙고와도 모순됩니다. 미사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잔치와는 다릅니다. 사제가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잔치에 초대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을 당신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다시 말해 성찬의 초대자는 주님이시며 사제는 봉사자로서 그분의 직무를 대리합니다. 사제는 교계제도 안에서 평신도보다 지위가 높아서 우선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미사 전례를 집전하고 신자들을 이끄는 공동체 지도자이자 주도자이기 때문에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찬례 잔치를 보통의 잔칫상과 동일선상에 놓고 그 식사예법을 성찬례 잔치의 본보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성체를 영하는데 있어 사제의 우선권은 그가 그리스도의 제사를 준비하는데 있어 그리스도의 초대를 첫 번째로 따르고 자신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공동체에 솔선수범한다는 표현입니다. 성체를 영하는 방법을 보면 지금은 손에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몇 년 동안만 해도 영성체는 입으로만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신자 영성체의 원래 형태는 처음부터 손 영성체였습니다. 지금부터 1700여 년 전에 나온 예루살렘의 주교 시릴로의 ‘신비 교리’는 주님의 몸에 대한 깊은 공경을 그 명백한 증거로써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에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제 나아가서 ... 왕을 모셔야 할 오른손을 위해 왼손을 어좌로 삼으십시오. ...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집어서 받아 모시며 ”아멘“이라고 말하십시오. 그런 다음 조심성을 다해 거룩한 몸을 접촉함으로써 눈을 거룩하게 하여 이를 영하십시오. ”(V. 21).
입 영성체에 관한 증언은 6세기경에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손을 사용할 수 없는 병자들을 위한 예외적인 방법으로 여겼습니다. 신자들의 영성체가 손에서 입으로 옮겨진 근거 가운데 하나는 신자들이 성체를 즉시 영하지 않고 몰래 집으로 모셔가 미신행위 등의 부당한 용도로 이용하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성체 형식이 손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천으로 앞가슴을 받치고 성체를 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3세기부터 성체대가 설치되었으며 17세기부터는 흰 천을 친 성체대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경신성사성은 1969년에 훈령을 통해 손 영성체를 부분적으로 허용하였고 오늘날에는 이제 손 영성체가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입 영성체를 금지하진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 있습니다. 비록 입 영성체 방법에서 지난 시대까지 강조되었던 두려움과 지나친 죄의식 그리고 부당함에 대한 의식이 또 다시 강조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와 반대로 경외심과 은혜로움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없는 태도는 안 될 것입니다. 영성체하는 사람의 태도와 몸짓은 신앙의 깊은 신비가 드러나는 표지가 됩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주님 현존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외적인 방법에서 내적인 깊이인 주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 그리고 경외심과 은혜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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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전례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