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신앙

영적훈화 87

  예수님은 공생활 가운데 많은 기적들을 보여주셨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이를 살리시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넘는 군중도 먹이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고 당신을 믿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기적을 보고 당신을 추종하려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라고 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다.

  바오로 사도도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2) 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보고 믿는 것임을 고백한 것이다.

  이처럼 참된 신앙이란 기이한 현상이나 초능력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순명으로 죽음과 죄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 성모님 발현, 성체변화 등을 주장하는 이들은 가시적인 기적이나 기이한 현상에 중점을 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과장된 선전을 하거나 성역화 작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역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우에는 로마교회에 조사를 요구하거나 지역교회의 교도권과 가르침에 순명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장된 주장들을 관철시키려 한다.

  우리의 건전한 신앙을 해칠 수 있는 이러한 그릇된 신심활동을 주의하며 예수님의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하겠다.

“너희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2010. 6. 23

범 어 천 주 교 회

백승열(라디슬라오)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