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진료를 끝낸 의사는 그녀에게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병은 삶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 이를테면 슬픔과 분노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쌓인 감정을 풀어주는 것이 해결책임을 생각한 의사는 잠시 뒤 진료실에 딸려 있는 온갖 종류의 약들이 즐비한 조그만 방으로 여인을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빈 병으로 가득 찬 선반을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빈 병들이 보이지요? 저 병들의 공통점이라면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는 사람 한 명쯤은 너끈히 죽이고도 남을 만한 양의 독을 넣어 병을 채울 수 있습니다. 또는 열을 내리게 하고 욱신욱신 쑤시는 두통을 사라지게 하고 몸에 잠복해 있는 박테리아를 퇴치하기에 충분한 만큼의 약을 넣어 병을 채울 수 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무엇을 결정하든 나는 그것으로 병을 채울 수 있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매일은 이런 빈 병들 중의 하나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유익하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들로 병을 채울 수도 있고, 해롭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로 병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빈 병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채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채울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는 우리들은 한 번 뿐인 삶을 사랑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2017. 11. 21.

주교좌 범어대성당

이성인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