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라. (다니엘 3:67)

영적훈화 429

바야흐로 대구의 여름이 부쩍 와 닿는 시기입니다.

대구에서도 특히나 수녀원은 모든 더위와 열기가 24시간 가시지 않는 대구 여름의 절정인 곳입니다. 물론, 더한 곳도 많지만 적어도 제게 있어 수녀원의 수련소 여름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들 여름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고사하고, 냉장고의 얼음마저 수련소에서는 보기 힘든 품목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낮에 호미를 손에 들고, 묵주기도를 하며 정원에서 풀을 뽑아야 할 때면 수도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암담함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어도 수련소 공동침실은 온도는 40도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수련소 뿐 아니라 아침 미사 후 식당으로 가는 본원 수녀님들 모습도 더위에 지쳐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위에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도 흐르는 땀 덕분에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으니 매사에 의욕이 없이 거의 좀비처럼 휘적휘적 걸어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리 저리 뒤척이다 잠이 깜빡 들었는데, 꿈인 듯 하얀 천이 펄럭거리면서 바람을 실어다 주었습니다. 한 줄기 바람 덕분에 푹 잠이 들었고, 그런 밤들이 몇 날 동안 계속 되니 어느 덧 제게는 그 시원함이 하느님 체험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에 함께 하는 자매수녀들에게 천사가 바람을 날라다 주었다고 신나게 입방정을 떨었는데, 한 자매가 말했습니다. “조용히 좀 해요”

사실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그 자매는 어차피 잠도 못 드는데 다른 자매수녀들을 위해 좋은 일이나 하자는 의미로 부채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채를 부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희 수련소에서는 더위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옆에서 뒤척이는 자매수녀들을 위해 부채를 부쳐주는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혼자서 부채를 부치면 힘도 들고, 덥지만 누군가를 위해 부쳐 주는 부채바람은 에어컨보다 더 시원하고 행복한 축복이었습니다.

이번 여름도 수녀원 성당 앞에는 예년처럼 말씀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것입니다.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 하여라!”

무조건 힘들고 덥다고 짜증내기 보다는 주위에 있는 이웃들에게 시원함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에게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2017. 6. 27

주교좌 범어대성당 

                           이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