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적훈화 439

그늘과 서늘한 바람 한 자락을 찾아다니던 여름은 어느새 물러가고 아침, 저녁 서늘한 바람을 기분 좋게 맞이하는 가을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도와 사랑의 실천을 미루었던 우리의 변명이 무색해지는 때입니다.

수녀원에서는 본당소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소임이 주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은총의 때는 본원 엠마오에 누워 계신 수녀님들을 도와드리는 소임을 할 때였습니다.

가장 힘도 없고,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가운데서 수녀님들은 미사도 참례하고, 기도시간도 가집니다. 그 가운데서 저에게 가장 큰 힘을 주셨던 수녀님은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시던 중에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몽골 선교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을 침대에서 봉헌하셨던 강요세파 수녀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곧잘 걸으시던 수녀님은 차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마침내는 말도 잃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도 없이 되어 좋아하시던 음식대신에 환자용 유동식으로 연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력하게 누워서 하루에 몇 번씩 체위를 변경해 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겨서 고생을 하고,

목욕을 해 드릴 때도 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표현할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을 온 몸으로 겪으시는 수녀님은 겉보기에는 고통 그 자체로만 보였습니다.

그런 수녀님에게 저는 영적인 무력감, 육체적 나약함, 때로 여러 가지 일을 해내야 하는 부담감을 다 털어 놓았습니다. 수녀님 머리맡에서 복음을 읽고, 인간적인 짜증, 어려움을 이야기하다가 때로는 피곤해서 기도하기 싫다고, 저녁 묵주기도 시간을 빠지겠다고 칭얼거리면 수녀님은 당신의 눈으로, 잡은 저의 손에 힘을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힘들지? 조금만 더 힘내! 나대신 수녀가 대신 묵주기도를 해 줘야지!! 얼른 다녀와”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손가락의 힘으로 수녀님은 어린 후배수녀의 성소를 다져주셨습니다.

마지막 숨을 멈추기 전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던 수녀님의 모습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더워서, 힘들어서, 시간이 없어서…

우리의 기도와 사랑을 멈추기에는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들입니다.

본당 곳곳에서 땀을 흘리면서, 다친 마음을 봉헌하면서 조금 씩 조금 씩 예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는 은총의 가을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2017. 9. 5.

주교좌 범어대성당 

                         이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