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영적훈화 412

재를 이마에 바르는 예식으로 시작하는 사순시기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 하십시오.”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먼지로 돌아갈 우리 육신의 허망함을 기억합니다. 이 허약한 육신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구원하시는 파스카의 신비를 우리 각자의 삶으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참된 회개가 필요합니다.

참된 회개의 표지는 무엇일까요? 간절하고 순수한 지향입니다. 사순시기에 특별히 많이 듣는 말씀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입니다. 즉 회개의 표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기적인 욕심과 쾌락을 따르는 육적인 삶을 떠나 하느님의 뜻을 찾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영적인 삶으로 돌아서려는 노력이며 열매입니다. 하지만 그 행위가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면,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하느님도 복음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봉사를 할 때에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기위해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에게 “내려오너라.”고 하셨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죄의식, 약점,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하늘 높이 세운 자격지심과 헛된 자존심의 높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키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마음 그대로,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님 품에 안겨 울 수 있습니다. 또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심이란 어떻게 보면 사람이 하느님을 믿기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끝까지 믿어 주시는 마음에 그제야 우리의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외침을 들은 후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습니다. (요나 3,4-5)

예수님께서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게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22)

우리의 회개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을’정도로 간절하다면 남을 평가하고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사람의 일’ 을 생각할 여유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2코린6,2)이니 그 은총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17. 2. 28.

  주교좌 범어대성당 

                             한 아녜스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