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

영적훈화 414

흔히 사순시기는 회개와 용서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때라고들 합니다.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들을 깊이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돌아서서 선을 행한다는 의미에서 사순시기는 우리들 자신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래서인지 사순시기를 보낼 때 마다 변할 듯 변할 것 같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고, 늘 같은 내용의 고해성사를 반복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이야기가 저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어느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신학교에서 하는 피정에 참가했다가 부르심을 받고는 부모님을 졸라서 이른바 소신학교라고 하는 중고등학생을 위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한창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에 함께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고, 더구나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밤이면 어두운 공동침실에서 훌쩍거리면서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몇 번씩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신부님은 “얘야, 하느님께서 너의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주고 계신단다. 무서워하지 마라”하시면서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늦은 밤까지 아이의 침상을 지켜주곤 했습니다.

어느 겨울 날, 50명 남짓한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샤워를 하면서 제대로 환기를 하지 않아 곰팡이가 쓸 자 신부님은 아예 환풍기를 틀어놓고 샤워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찬바람 쐬기가 싫어서 그냥 샤워를 했지만, 그 신학생은 신부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켜놓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켰고, 누군가가 뒤를 이어 끄기를 몇 번 되풀이 하다가 그만 화가 난 누군가가 그 신학생의 뒤에서 찬 물을 들이부었습니다.

그 신학생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어떻게 말을 했을까요?

바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바오로야, 뒤를 돌아보지 말지.”

“예, 그러지 않아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하느님의 용서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사순시기입니다.

무겁고, 부담스럽기 보다는 좀 더 하느님과 가까이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2017. 3. 14.

주교좌 범어대성당 

                             이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