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약점

영적훈화 424

책 읽기에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계절이지만, 그래도 햇볕을 피해서 그늘을 찾아서 읽던 수련소에서의 독서 시간은 지금도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책을 고르라면 베트남의 구엔 반 투안 주교님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입니다.

이 책에서 추기경은 13년간 베트남에서 옥살이를 할 때, 9년을 독방에서 지내면서 기도와 묵등을 하며 감옥 안에서 마치 사도바오로가 공동체에 편지를 보냈듯이 신자들에게 달력종이에 적은 희망의 글이 기록되어 있으며, 손바닥을 제대와 성작으로 삼아 포도주 두 방울과 물 한 방울로 남몰래 미사를 봉헌한 생활 등 영적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교님은 예수님의 약점을 매우 사랑했는데, 주교님이 사랑한 예수님의 약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기억력이 좋지 않으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난 중에 계셨던 예수님은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가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셨을 때 예수님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23,43)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지은 죄를 모두 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도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아들을 보았을 때 모든 것을 잊고 아들에게 달려가 껴안으며 아들이 준비한 말을 할 겨를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2. 예수님은 수학을 모르십니다.

양 백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었을 때 예수님은 지체하지 않고 아흔아홉 마리를 놓아 둔 채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어떤 위험이나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계산할 줄 모르는 단순함과 죄인들을 위한 사랑이 넘치는 분입니다.

3. 예수님은 논리를 모르십니다.

은전 열 닢을 가진 여인이 한 닢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은전 한 닢을 찾기 위해 등불을 컵니다. 은전을 찾자 여인은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입니다. 잔치에 들어가는 비용은 은전 한 닢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은전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그 하나가 소중합니다.

4. 예수님은 재정과 경제를 모르십니다.

포도밭 일꾼들의 비유를 생각해 봅니다. 오전9시, 12시, 오후3시와 5시쯤에 온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똑같은 품삯을 주었습니다.(마태20,15) 아마도 공동체의 관리자나 회사의 경영자였다면 분명 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고와 가치관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약점을 지니신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것은 하느님께서 사랑(1요한4,16)이시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이유를 찾지 않고, 헤아리거나 벽을 세우지 않으며, 계산하거나 모욕을 기억하지 않고, 조건을 달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 때문에 움직이시고 그 사랑은 바보짓을 하게 만들며 인간적인 계산을 허물어뜨립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약점을 사랑하며 그런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요?

2017. 5. 23.

주교좌 범어대성당 이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