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과 우리는 성령(聖靈)을 믿습니다
1. 하느님의 영, 성령
그리스도교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는 하느님의 영, ‘성령을 믿는다’(사도신경)고 고백한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영(聖靈)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은 교회의 영혼으로서, 활동과 힘과 생명의 원리로서, 교회를 움직이게 하고 교회에 영감을 주고 교회를 인도하면서 우리를 거룩함에로 인도하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2. 구약성서에 나타난 성령
① 하느님의 영
구약성경에서 인간 사회와 자연계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영을 표현하는 단어인 ‘루아흐(Ruach)’는 공기의 움직임․바람․입김 또는 숨결․얼 등을 뜻한다. 하느님은 불가항력적이고 가공할 힘을 지니는 바람처럼 신비로운 활력으로 넘치는 분이시다. 또한 만물을 살리고 지탱하는 입김처럼 만물을 창조하고 살리는 분이시다. 이와 같은 하느님 체험이 바람과 입김을 뜻하는 ‘루아흐’ 는 활력과 생명력을 지니신 하느님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로 채택되었다.
바람은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만물을 움직이게 하고 생명을 준다. 바람은 비를 몰고 오며 가뭄을 끝내게 하고 만물에 생기를 불어놓는다. 바람은 힘과 생명의 원천이다. 하느님은 자연을 대표하는 바람을 이용하여 당신의 계획을 실행하신다. 바람은 하느님의 숨처럼 하느님으로부터 불어 온다(탈출 15,8:시편 18,15). 그것은 창조와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활용하시는 도구이다.
하느님이 진흙으로 몸소 빚으신 ‘사람’의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그가 살아 있는 ‘아담’이 되었다(창세 2,7). 인간은 숨 쉴 때에 살아 있고 호흡이 정지될 때 죽는다. 숨은 곧 생명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생명체의 숨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숨을 주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당신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몀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 29-30)
모든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이 주시는 숨,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숨이 하느님의 영이다. 성령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살아 계신 하느님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유효한 원천이시다. 이처럼 하느님의 영, 하느님의 숨이 없으면 모든 것은 생명력을 잃고 만다.
②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의 성령
성령은 하느님의 창조적․도덕적 힘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구원을 이루는 힘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영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내리어 당신 백성을 구원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혜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구출해 내도록 사명을 받은 모세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렸다(민수 11,17).
판관시대에는 오드니엘․기드온․삼손 등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려짐으로써 그들은 대담성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비범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새 인물이 되어 민족 안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되고 백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판관 3,10;6,34;13,25).
판관들을 계승한 이스라엘의 왕들 역시 하느님의 영을 받아 지혜와 슬기, 경륜과 용기, 하느님을 알고 두려워할 줄 아는 영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이사 11,1-3). 또한 하느님의 영은 예언자들에게 내렸고(61,1),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용기와 박해를 무릅쓰는 인내로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구약성경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실 ‘주님의 종’, 곧 메시아에게 하느님의 영이 그 누구에게보다도 충만히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9,5;11,1-2;42,1)
성령(聖靈)은 영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하느님의 힘이고 생명력이며 세상과 인간 사이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행동방식이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모든 곳에는 언제나 활력과 생명을 일으키는 성령께서 작용하신다. 이처럼 인간을 하느님에게로 향하게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내적이고 인격적 힘인 성령은 하느님의 효과적 행위이다.
3.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예수님은 언제나 성령과 함께 하셨다. 성령은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죽음,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과 함께 활동한 하느님의 능력이었다. 예수님 안에서 성령은 새로운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분 안에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셨다(마태 1,20;루카 1,35).
① 예수님 세례 때의 성령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그분 위에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와 머무르셨다(마태 3,17;마르 1,10). 이때 하느님은 세례 받는 예수님이 당신의 아드님임을 세상에 선포하고 세상의 죄악을 짊어진 ‘종’으로서의 사명을 인식시키신다(마르 1,11;이사 42,1). 성령은 세례 받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해 준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사랑의 상징이다.
② 성령의 인도
예수님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 즉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단식하며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셨다(루카 4,1-13). 이스라엘 백성이 악마의 유혹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돈 ․ 명예 ․ 권력의 기초 위에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라는 악마의 유혹을 받았지만 성령의 힘으로 이겨내셨다.
③ 성령으로 인한 해방을 선포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은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셨다.”라고 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함으로써 당신과 성령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선언하셨다(루카 4,16-21).
④ 성령으로 인한 악령추방과 병자치유
예수님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활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차례 성령으로 악령을 쫓아내셨다.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은 성령의 활동을 드러내는 표지들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힘 안에서 악마를 추방하고(루카 4,36;마태 12,28) 병자들을 고쳐주고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신다(루카 5,17;6,19;8,54 이하;마태 12,18).
⑤ 성령의 기쁨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가며(루카 10,21),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5,16),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기도하신다(루카 10,21;마태 11,25-27). 예수님의 세례 때에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이루게 하고 아들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을 전달하며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에 따라 종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태세를 갖추게 해주신다.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쳐 성령은 그분 안에 항구하게 머물고 활동하신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를 체험하신다. 성령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활동과 기쁨, 아버지와의 일치의 근원이시다.
4. 성령강림
① 성령(협조자)을 약속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을 완성하고 승천하면서 당신 제자들에게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협조자(파라클리토, Paraclitus)’는 그리스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단어로서 법정에서 대변인이나 변호사처럼 ‘곁에 서 계신 분’, 그리고 전쟁을 앞둔 병사를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② 오순절 성령강림(聖靈降臨)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한 약속은 오순절에 이루어졌다. 오순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농경 축제로서 첫 곡식을 봉헌하는 감사절이다. 그리고 유다인들이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선사받은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 성경읽기 : 사도 2,1-13
성령은 바람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거역할 수 없는 하느님의 힘이다. 성령은 불처럼, 더러운 것을 불태워 사람들을 내적으로 정화하고 열정을 불어넣어 주고 변화시키는 힘이다.
불혀의 모양으로 내린 성령은 사도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능력을 주며 그들의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을 일치시켜 주신다. 성령은 사람을 내적으로 변화시키고 자유롭게 하며 그들을 새 공동체로 형성시켜 주는 일치의 힘이시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땅 끝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성령강림은 바벨탑 사건(창세 11,1-9)을 전복시키는 놀라운 일을 일으켰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각기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로 말하였지만 한데 모인 사람들은 각기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었다. 성령은 분열되어 있는 사람들을 일치시키는 힘이시다. ✜ 성경읽기 : 사도 2, 1-13
③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사도 베드로는 성령에 가득차서 군중들 앞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첫 설교를 했다. ✜ 성경읽기 : 사도 2, 14-36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감명을 받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베드로에게 물었다.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2,38)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세례를 받은 신자가 삼천 명이나 되었다는 것(사도2,41)은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놀라운 활동의 결과이다.
이처럼 사도들은 이제 성령의 보살핌과 도우심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당당하게 자신들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창조 때에 하느님의 영이 사람에게 들어가 살아 있는 생명으로 태어난 것처럼, 구약과 신약을 통해 예비되고 그 기틀이 마련되었던 그리스도의 교회도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써 비로소 살아 있는 교회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성령은 무엇보다 우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힘이시다. 이로써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교의 시기가 개막되었다. 성령 체험은 교회로 하여금 위기와 난관을 극복하게 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만민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린 사실을 깨닫게 했다.
신약성경의 4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라고 한다면 사도행전은 성령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령의 역사(役事)가 넘쳐흐르고 있다. 사도들은 구원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대담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였는데 민중 앞에서(사도 2,14-36;3,11-26), 법정과 의회에서(4,2-20;5,26-42;7,1-53;23,1-11) 그리고 관헌과 왕 앞에서(24,10-23;26장) 성령이 주시는 지혜(知慧)와 언변으로 진리를 설파하여 당대의 학자들을 침묵시켰다.
또한 사도들은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 여러 가지 기적을 성령의 힘으로 행하였고(4,14;5,15-16 등). 가야 할 곳을 식별하였으며(16,6-7), 악인들의 생각을 꿰뚫어보았다(5,1-11;8,18-23). 그들은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8,1-3;12,1-5;13,50-51)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항상 성령의 인도로 복음 선포의 발길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순교(殉敎)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다(7,54-60;12,1-2).
성령은 우리를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우리 안에 거처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신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로마 8,9).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을 받음으로써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아 모시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체험했던 것이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영에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 받아라’ 하고 욕할 수 없고,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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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전례봉사자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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