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은총의 샘인 성사, 세례성사
Ⅰ. 성사(聖事)란 무엇인가?
1. 하느님 은총의 표지
사람들은 보통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전할 때 행동이나 물건을 통해 전한다. 예를 들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꽃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 이때의 꽃은 마음을 전달하는 표지가 된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도 이런 인간의 삶의 구조를 존중해 주신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은총을 보이는 표지를 통해 전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보이는 표지(Sign,標識)를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사’(聖事, Sacramentum)라고 한다.
가톨릭교회는 우리에게 신앙을 심어 주고 신앙의 성숙을 돕고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기 위하여 우리 생활과 밀접한 표현과 사물들로 구성된 여러 가지 특별한 표징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표징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심을 체험하게 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곧 성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눈에 보이는 표징(외적 표지)이자 도구이다.
◈ 7성사
예수님께서는 인간 삶의 핵심적인 것과 결정적인 순간들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 순간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 품위를 높여 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심을 깨닫게 하시려고 7성사들을 세우셨다.
이 7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치유의 성사인 고해성사·병자성사, 그리고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인 성품성사· 혼인성사이다. 이 가운데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와 성품성사는 일생에 단 한 번만 받으며, 나머지 성사는 시기와 기회에 따라 여러 번 받을 수 있다.
2. 하느님의 성사인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을 체험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표징이 바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인류 구원 사업을 성취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도록 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성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완전한 성사이시고, 특별한 표징이 되신다.
3.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워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게 하고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운 교회와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는 신앙인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인류 구원사업을 계속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이고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성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회 안에서 예수께서는 성령과 함께 우리와 만나고 우리에게 은총을 주면서 우리와 대화를 나누신다.
4. 성사를 통하여 받는 하느님의 은총
① 하느님의 선물인 은총
‘은총(恩寵)’이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Gratias)은 ‘아름다운 자태’를 의미하지만 ‘호의’, ‘자비’, ‘혜택’ 이라는 뜻으로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베풀어 주는 호의나 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이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거룩하게 하고 당신께로 이끌어 들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은 우리가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초자연적 선물’, 즉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격이나 능력을 보고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 자비와 사랑으로 조건 없이 주시는 선물로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준다.
② 생명의 은총(상존은총)
인간이 영원한 생명과 거룩함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 은총을 ‘생명의 은총’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아기가 부모에게 생명을 받고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은총은 지속되는 선물이기 때문에 ‘상존 은총(常存恩寵)’이라고도 말한다.
사람은 한 번 ‘생명의 은총’을 받으면, 그 사람이 고의적으로 큰 죄를 저질러 자신과 하느님을 분리시키지 않는 한, 이 은총은 항상 머물러 있다.
② 도움의 은총(조력 은총)
우리가 생명의 은총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보호가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아기가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과도 같다. 이 은총을 ‘도움의 은총(조력은총, 助力恩寵)’이라고 말한다. ‘도움의 은총’은 우리 안에 항상 머물러 있는 은총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지성과 의지를 내적으로 비추고 움직여 줌으로써 그때그때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우리를 돕는 은총이다.
5. 준성사
교회가 오랜 관습과 거룩한 전통에 근거하여 신자들의 영적이익과 은총생활을 위해 성사를 어느 정도 모방하여 설정한 상징이나 예절을 ‘준성사(準聖事)’라고 한다.
준성사는 성사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성사생활에 도움을 주는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사와 준성사가 다른 점은,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운 것으로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지만, 준성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한에 의해 교회가 세운 것이므로 가변적이고 고쳐질 수도 있다. 준성사는 축성(祝聖), 축복(祝福), 구마(驅魔)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축성(祝聖)
축성은 하느님께 드리기 위해 하느님만의 것이 되도록 따로 구별하여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성별(聖別)’이라고도 한다.
▪ 사람의 경우:수도자들의 서원(誓願)의 경우에 ‘세례성사에 의한 축성에 깊이 근거하며 이 축성을 더 풍성히 표현하는 특별한 축성’을 받는다(성직자는 준성사가 아니라 성품성사로 축성된다).
▪ 물건의 경우:성당, 제대, 성작, 성반, 성유, 종, 묘지 등을 축성한다.
◈ 축복(祝福)
축복은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하느님께 특별한 은총과 복을 비는 것이다. 이를 ‘강복(降福)’이라고도 한다.
▪ 사람의 경우: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신앙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자성호나 안수로 복을 청해 주는 기도 행위이다. 이것은 성직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이 멀리 떠날 때나 특별한 날에 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이 복을 빌어줄 수 있다. 또 수도원 장상의 회원들에 대한 축복이나 수도서원 예식 그리고 교회 직책(독서직․시종직․교리교사 등)을 위한 축복이 있다.
▪ 물건의 경우:십자고상․성수․성초 등을 통하여 혹은 이를 사용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교회가 지향하는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지기를 빈다. 또한 교회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집․자동차․사무실․점포․기계 등도 축복하는데, 이것은 하느님께 봉헌하고 교회의 중재로 하느님의 축복을 비는 데 그 뜻이 있다.
▪ 방사(放赦):은사를 놓는다는 뜻으로, 주로 몸에 지니는 십자고상․묵주․성패(메달)․성의(聖衣) 등에 기도해 주는 것인데,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특별한 은사를 받는다.
◈ 구마(驅魔)
구마는 어떤 사람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말한다. 구마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아서 사제만이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준성사는 성사와 달리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얻는 은총의 정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십자고상 자체가 은총을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고상을 통해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할 때 은총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봉헌과 신앙의 정신으로 준성사에 임해야 한다.
우리가 준성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주의하여야 할 점은 준성사를 통해 이기적이거나 물질적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재앙을 면하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십자고상이나 묵주를 지닌다면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생각 자체가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미신 행위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Ⅱ. 세례성사
1. 세례성사의 의미
① 하느님의 자녀
우리가 정해진 준비 과정을 마치고 천주교에 정식으로 입문(入門)하게 될 때 받는 예식이‘세례성사’이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죄(罪)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 베푸는 다른 성사들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인의 사명(왕직, 예언직, 사제직)을 수행하게 된다.
세례(洗禮)는 본래 물에 잠기었다가 나오는 예식이었지만 점차 물로 이마를 씻는 예식으로 간소화되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상징한다. 세례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고,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하기 때문에 물에 잠기는 예식을 하였던 것이다.
물로 씻는 것은 일종의 정화(淨化)의 행위로 마음을 정화시키고 내적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容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물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것처럼,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인류구원의 역사에 있어서도 물이 가지는 정화(용서)와 새 생명의 사례를 볼 수 있다.
◈ 노아의 홍수(창세 6-9장) : 노아가 살았던 당시 인간의 죄악은 극에 달하여 하느님께서는 물로써 인류를 멸망시키셨다. 그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은 하느님께로부터 불림을 받아 인류를 집어삼킨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그들이 ‘낡은 인간’으로서 죽고 ‘새 인류’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 성경읽기 : 1베드 3, 20-21
◈ 모세의 홍해바다 기적 (탈출 12장) : 하느님께서는 홍해의 바닷물로 파라오의 군대를 멸망시켰듯이 세례의 물로 악의 세력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에서 구해 당신 백성으로 태어나게 했듯이 우리도 죄의 죽음에서 구출하여 당신의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
✜ 성경읽기 : 1코린 10,1-2
2. 세례의 효과
① 하느님의 자녀, 상속자
세례를 통하여 초자연적 생명으로 새로 태어나 그리스도와 결합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고 동시에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의 상속자가 된다.
✜ 성경읽기 : 로마 8,15-17
②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분께 당신을 맡기며 삶을 반성, 회개하고 성삼위(聖三位)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 세상의 죄악과 헛된 욕망에 대하여 죽고 초자연적(超自然的) 생명을 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자격을 얻는다.
③ 죄의 용서
세례성사는 죄악에 물든 과거의 우리 자신은 죽게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새 생명을 얻게 한다. 곧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가 물려받은 ‘원죄(原罪)’와, 지금까지 우리가 저지른 죄인 ‘본죄(本罪)’와 죄의 ‘벌(罰)’까지 모두 용서받아 깨끗한 몸으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들게 된다.
④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일원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게 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 교회)의 일원이 되며, 성령의 궁전이 되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다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성장 발전하도록 노력할 의무도 지게 된다.
⑤ 인호를 받음
세례를 받게 되면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인호(印號)를 받게 된다. 따라서 한번 이상 세례를 받을 수 없고 세례를 받아야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
2. 세례성사의 집전자
세례성사는 성직자(주교,사제,부제)가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누구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까지도 줄 수 있다. 이때에 교회가 정한 양식은 세례 받을 사람의 이마에 물(자연수)을 부으며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무)에게 세례를 줍니다.” 하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세례를 베풀 수 없는 위급한 경우 모든 가톨릭 신자는 세례성사를 줄 줄 알아야 하며, 이렇게 세례를 베푼 경우에는 즉시 이 사실을 가까운 본당 신부에게 알려야 한다. 위급할 때에 세례받은 어린이는 병이 완쾌되면 보례(보충 예식)을 받아야 한다.
3. 세례성사를 받기 위한 준비
세례성사는 우리의 완전한 자유의사에 따라 주어지는 성사이므로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세례성사를 받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셋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리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지금까지 지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悔改)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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